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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세계 고인돌의 50% 이상이 우리나라에 있다.,,,, 한반도는 고인돌의 왕국이다. 고인돌은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지구상에는 약 10만개의 고인돌이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이 문제를 풀면 우리나라의 고대역사가 저절로 풀린다. 고인돌을 영어로는 Dolmen 또는 Table Stone 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마을의 부족장의 무덤이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제천 황석리에서 고인돌을 발굴해 보니까 전라도 (고창군) 지방에 가면 한마을에 고인돌이 수백개가 넘을 정도로 많은데,,,, 고인돌을 발굴해 보면 주변에서
왼쪽의 큰 것 3개가 고조선 시대 ( BC 2333년에서 BC 238 년까지 ) 유물의 상징인 비파형 동검이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 작은 받침돌을 아래에 놓고 위에 큰 덮개돌을 얻어 둔 형태인데 엄청난 인력을 동원하여 고인돌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인가 ??? 인력으로 1톤의 돌을 1.6 km 옮기는데 최소한 20명 정도의 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덮개돌을 운반하고,,, 땅을 파고 무덤방을 만들고,,, 덮개돌의 운반로를 만드는 사람,,,, 청동기 시대에 이런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서는
충북(忠北) 제원군(提原郡) 청풍면(淸風面) 황석리(黃石里)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수몰지역에 위치한 이곳에 있었던 고인돌을 1962년에 발굴하였는데
2005년 10월 이곳을 발굴조사 하였는데
그러면 한국 사람들의 뿌리는
평안남도 성천군 백원리 9호 고인돌 무덤에서 평안남도 덕천시 남양 유적지는 BC 3800 년경의 청동기 유적지로 판명되었다. 평양시 부근 상원군 장리 1호 고인돌 무덤에서 평양시 상원군 룡곡리 4호, 5호 고분에서는 비파형 장끝과 청동단추와 함께 사람의 유골도 발견되었는데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BC 3000 년경의 청동기 유물이 발견됨으로써 평안남도 증산군 용덕리 10호 고인돌 무덤의
두껑돌 겉면에 80여 개의 구멍이 새겨져 있었는데 평양시 상원군 번동 2호 고인돌 무덤에도 별자리로 보이는 80여 개의 홈구멍이 새겨져 있다. 즉 고조선 시대 ( BC 2333 년 ~ BC 238년 )이전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별을 세밀하게 관측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고인돌 유적을 꼼꼼히 살펴보면 고인돌에 깊숙한 홈을 파둔 것 같은 것이 있는데, 또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 칠성바위라는 큰 바위들이 많이 있고,,,, 한반도에 남아있는 고인돌의 제작년대가 BC 3000 년에서 BC 200 년 사이인데 고인돌의 뚜껑돌 위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었다는 것은 이후 고구려시대 왕릉에서 나온 벽화에도 북두칠성의 형상이 다량으로 발견되고, 이것은 우리민족이 하늘의 자손,,, 북두칠성의 자손,,, 이라고 생각했으며, 장례식에 사용하는 관속에 북두칠성을 그려놓는다든지,, 우리나라 역사상 북두칠성의 기운을 타고난 것으로 전해지는 인물로는 일제시대때 미신이라면서 못하게 하였고,,,,
석기 시대 ( Stone Age ) 구석기시대 ( Old Stone Age / Paleolithic ) : 구석기시대 ( Old Stone Age )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동굴이나 바위 그늘 또는 강가에 움막집을 지어 작은 군집 생활을 했다. 한반도에 구석기 시대 유적이 발굴된 것은 중국에서는 베이징(北京) 근교에서 발견된 베이징 원인(原人)의 유골,,,,, 30만∼60만 년 전의 유물 1981년 충북 단양 상시리에서 연세대 박물관 팀이 6~10만년전 사람의 유골을 발견하였다. 2003년 6월부터 2004년 6월까지 전남 장흥군 신북 유적지(4만여평)를 발굴 조사했는데, 돌을 갈아서 도구를 만든 시기는 구석기 시대로써 일본에서는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 라는 역사학자가 신석기 시대 ( New Stone Age ) 1만여 년 전에 지구의 빙하기가 끝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자연환경이 바뀌는데, 한반도에서의 신석기 시대는 약 1만년전 ~ 8,000년 전부터 시작되었는데, 한반도에서 신석기 시대의 유적지가 발견된 곳은 제주도 고산리 신석기 유적지에서는 BC 10,000 년경에 만들어진 돌을 갈아서 만든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신석기 시대 대표적인 토기 -- 빗살무늬토기 나무의 열매를 식량으로 사용하면서 이런 식량을 저장하기 위해서 흙으로 만든 그릇이다. 토기는 주로 저장용과 조리용으로 이용되었는데, 토기의 표면이 빗살모양의 무늬가 있다고 빗살무늬토기라고 하는데 한반도에서 발굴된 빗살무늬토기는 제작 년대는 초기의 것은 BC 6,000 년경부터 인데, 이 토기는 일본, 중국의 북쪽지역(만주 지역)과 몽고지역,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 시베리아 지역, 어떤 학자들은 이 토기가 북쪽의 몽고 지역과 만주지역에서 한반도로 전파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시베리아지역에서 출토되는 빗살무늬토기는 주로 BC 3,000 ~ BC 2,000년 경에 제작된 것인데
청동기 시대라고 청동기 제품만 사용한 것이 아니고, 이 당시에 토기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주로 무문토기 (無文土器)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리스(Greece)에서의 청동기시대는 BC 3000 년 경 부터라고 말한다. 우리민족이 살았던 만주 지역 -- 요하(遼河)강 유역에서는 BC 2500 년경에 청동기시대가 시작되었고, 우리민족이 만든 청동제품과 중국이 만든 청동제품은 제품의 질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난다. 그러나 중국에서 출토되는 청동기 유물에서는 아연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고조선 시대의 청동 유물은 매우 정교하며 그 기술이 아주 발달되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청동기시대 유물인 고조선 동검 -- 요녕식 동검 -- 비파형 동검에 대해서 살펴보면 고조선 동검과 함께 발견되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을 보면, 한반도에 청동기시대의 유적지는 3만개의 고인돌을 위시하여 수도 없이 많다.
집 주변을 정리하다가 돌무지 속에서 나왔는데 주인은 엿장수에게 팔아 넘겼고 철기 시대 ( Iron Age ) : BC 1200 년 ( 또는 BC 1000 년 ) 경 부터 청동기 제품보다 단단한 철(鐵)이 생산되면서 철과 청동기가 같이 사용되었던 시기이다. 한반도 주변에서 철기 시대의 유적이 발견된 것을 보면 (1) 이북 평양의 강동군 송석리의 무덤에서 쇠(강철)로 만든 거울이 출토 되었는데, 또 평양 강동군 항목리에서는 쇠(강철)로 만든 칼이 출토 되었는데, (2) 한국과 러시아의 국경지대인 연해주 ( 러시아의 바라바시 마을 )에서 러시아의 고고학자들은 연해주지역 철기시대의 기원을 BC 900 년 으로 보고있다. (3) 중국의 요하(遼河)강 유역에서는 (4)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철정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적지(주거지)에서 (5) 중국에서 철(鐵)을 사용한 흔적이 출토되는 시기는 당시 만든 유물들을 보면 주로 BC 500 년 ( 또는 BC 350 년 ) 경에 제작된 것이 많다.
그리스(Greece) 에서는 BC 1300 (또는 BC 1200 )부터 철(鐵)을 사용하였다. 이탈리아 ( Italy ) 에서는 BC 300 년 인도(India) 에서는 BC 1200 년 경부터 시작되었는데
한반도에서의 철기 문화는 또 창원 다호리(茶戶里)의 고대 유적지에서 중국의 화폐가 출토되었는데 이러한 유적지의 출토물을 보면 역사책 ( 중국인이 쓴,, 삼국지 위지 동이전 )에서도 한반도에서 또다른 철기 시대 유물은 2009년 충남 아산시 탕정면 용두리와 명암리 일대에서 AD 100 부터 AD 400 년까지 한국에서 발견된 쇠로 만든 철제 칼은 대부분 길이가 짧은 단검이었는데
그런데 청동기 문화에서 앞섰던 한국계 사람들이 중국으로 넘어가서 중국의 지배계층이 되는데, 당시 중국에서 철(鐵)의 제조 기술을 크게 발전 시킨 나라는 연(燕)나라 유적지에서 발굴된 철(鐵)의 제조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보면 이렇게 철(鐵)의 제조 기술에서 앞선 중국은
주로 지금부터 3000 ~ 4000 년전인 청동기 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 고인돌의 유적을 발굴하여 고인돌을 만든 연대를 측정해보니 즉 한국의 고인돌은 BC 3000 년 경부터 BC 200 년 경 까지에 만들어 진 것임을 알수 있다. BC 6000 년 경부터 돌을 갈아 도구를 만들고 농경사회를 이룬 신석기 시대의 시작으로 보고 즉 한국에서 고인돌이 만들어진 신석기 말기와 청동기 시대 초기는 상당히 중요한 시기에 해당한다. 즉 이 고인돌은 만들수 있었던 주인은 고인돌이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시기는 BC 200 년 경이다 그러면 왜 이 시기에 지금까지 만들어 오든 고인돌을 더 이상 만들지 않았을까 ??? 죽은 조상을 매장하는 장례문화는 가장 보수적이고 전통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 본인이 생각하는 이유는 즉 고인돌은
옛날에 중국사람들은 황하(黃河)강 지역과 양쯔강 (長江) 지역에 살았고, 중국은 황하(黃河)강 지역의 양사오(仰韶)문화의 유적이 BC 4500 년대의 것이고, 그런데 최근(2007년) 요하(遼河)강 유역에서 BC 7500 년대의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들이 발굴된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동북공정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이 이북(North Korea)을 먹기 위해서 하는 수작이라고 하지만 구석기 시대 유물만 있는 것이 아니고 청동기 시대 유물도 또 있다. 청동기 시대 유물들인데 그 당시 그곳에 있었던 고조선도 중국이라고 하고,,,, 이런 사실을 비웃고 말없이 증명해주는 유물이 바로 이러한 유물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동북공정 ??? 또하나.. 중국 놈들,,, 고인돌도 너희들 것이라고 우겨야지,,,,
한국의 고인돌은 BC 3000 년 경부터 BC 200 년 경 까지에 만들어 졌다. BC 3000 년경 청동기 시대가 시작하면서 고인돌은 만들어 지기 시작하였고,,, 시대적으로 보면 고조선 ( BC 2333 년 ~ BC 108 년 )시대에 고인돌을 만들었고, 고조선의 멸망은 고조선의 멸망과 함께 한반도에서는 고조선(古朝鮮 : BC 2333 년 ~ BC 108년 ) BC 2333년 고조선(古朝鮮)이 건국되었다. 기자조선 (箕子 朝鮮 : BC 1291 년 ~ BC 194 년 ) -- 은(殷)나라 출신의 기자(箕子)가 세운 나라. BC 300년경 연(燕)나라는 진개(秦開)를 앞세워 고조선을 침략해왔다. 위만조선 ( 衛滿朝鮮 : BC 194 년 ~ BC 108 년 ) --- 연(燕)나라 출신인 위만(衛滿)이 세운 나라 BC 108년 중국 한(漢)나라의 침입으로 고조선(古朝鮮) 의 마지막 집단인 위만조선(衛滿朝鮮)이 멸망함.
삼황 오제 ( 三皇 五帝 : BC 3528 년 ~ BC 2070 년 ) 시대 BC 771년 유목민족인 흉노(훈)족이 주(周)나라로 쳐들어와 주(周)나라는 동쪽으로 도망하였다. 연(燕)나라 ( BC 1100 년 ~ BC 222 년 ) --- 춘추 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중국의 진(秦)나라 ( BC 221 ~ BC 206 년 ) --- 진시황 (秦始皇)에 의한 중국 통일
마한 (馬韓) 마한 (馬韓)에는 모두 54개 부족 국가가 있었는데 BC 194년경에 중국 북쪽지역의 연(燕)나라 사람인 위만(衛滿)이 기자조선 (箕子朝鮮)을 공격할때 마한(馬韓)은
진한 (辰韓)에는 모두 12개 부족 국가가 있었는데 진한 (辰韓)의 마지막 왕은 <태기왕> 이었는데,
변한(弁韓)에는 모두 12개 부족 국가가 있었는데 변한(卞韓)은 BC 39년 서라벌군(軍)의 박혁거세에게 항복하면서 멸망하였다.
BC 194년경에 중국 북쪽지역의 연(燕)나라 사람인 위만(衛滿)이 기자조선 (箕子朝鮮)을 공격할때 이때 함께 이동한 집단중에서 일부는 B.C 57년에 진한(辰韓) 지역으로 이주해 온 박혁거세 무리는 선주민을 누르고 A.D 42년에 변한(弁韓) 지역으로 이주해 온 김수로왕의 무리들은 선주민을 누르고 6 가야를 세웠다. A.D 396년에 고구려가 백제를 토벌하자 경상도 지방의 가야국은 고구려의 세력권으로 들어 갔으나, 신라는 가야를 차례로 합병하여 나가는데,
세계의 고인돌중에서 절반정도의 숫자의 고인돌이 한반도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간단하지 않는가 BC 6000 년 경부터 시작되어 오던 신석기 시대가 돌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때에는 지방마다 그 제품의 질(質)에 대한 차이가 별로 없었다. 돌로 만든 칼을 들고 싸우는 사람에게 청동으로 만든 칼을 들고 싸우면 이기게 되어 있었고,, 이렇게 석기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 가면서 한반도에서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 당시 한반도 전역에 걸쳐서 고인돌이 있었다는 것은 한반도 전체가 청동기를 제작하였다는 증거이고 이렇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청동기 시대를 2000년간 보낸 것이다. 그런데 철기 시대가 오면서 또 다른 큰 변화를 당하는데 청동기를 잘 다루던 사람들이 철기를 잘 다룬다는 것은 상식이다. 철(鐵)로 된 무기나 농기구 들이 만들어 지면서,,,, 그 증거가 BC 3000 년부터 BC 200년 사이에 작은 고을마다,,, 우리나라 전국적으로 만들어 오든 고인돌이 즉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청동기 문화가 시작되었고,,,,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넘어 가면서 엄청난 변화를 겪었고,,,,,, 옛날에 <<주몽>> 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는데,,, 청동기 문화에서 앞섰던 한국계 사람들이 중국으로 넘어가서 중국의 지배계층이 되는데, 당시 중국에서 철(鐵)의 제조 기술을 크게 발전 시킨 나라는 연(燕)나라 유적지에서 발굴된 철(鐵)의 제조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보면 이렇게 철(鐵)의 제조 기술에서 앞선 중국은 그후 중국으로부터 철(鐵)의 제조 기술을 배워 실력을 쌓은 고구려는 고인돌을 만들었던 BC 3000 년 경부터 BC 200 년 경 까지의 청동기 시대는 한국이 중국을 훨씬 앞섰고 이것이 고인돌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영국에 있는 스톤힌지 ( Stonehenge )는 UNESCO 문화제로 지정되었고 세계 7대 불가사이라고 떠든다. 영국에 있는 스톤힌지 ( Stonehenge )는 1950년대 영국의 역사 학자들이 이 지역을 발굴, 조사해 본 결과를 보면 그러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규모로 건설된 한국의 고인돌은 7만개나 되는데,,,,, 영국에 있는 1개의 군락으로 되어 있는 고인돌은 세계적인 유물이고,,,, 청동기 시대 영국의 국력은 이렇게 1개 군락의 고인돌을 만들수 있는 국력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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