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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Roma) 제국 에트루리아 ( Etruscan ) 왕국 BC 7199 년 ~ BC 3899 년 까지 파내류산 ( 波奈留山 : 파밀고원으로 추정 됨 ) 밑에 있었던 수메르 지역에 정착하여 살았던 민족은 다시 주변의 다른 지역(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 등등)으로 이동하였는데, BC 2333년 배달국(倍達國)이 멸망하고 고조선(古朝鮮)시대가 되었을 때 이주할 당시 이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이들이 만든 문화의 기술 수준은 아주 발달된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에트루리아족의 타르퀸 왕조는
BC 753 년 로물루스(Romulus)에 의해 로마라는 이름의 도시국가가 건설되었다. 로물루스(Romulus)는 고대 그리스와 트로이(터키)간에 10년간 벌인 전쟁인 고대 로마인의 신분은 귀족 (Nobiles) 과 서민 (Plebes)으로 엄격히 분리되어 있었다.
BC 508 년부터 비록 귀족과 원로들이 정치와 권력을 독점하였지만 공화정으로 가는 길을 터놓았다. 포에니( Poeni ) 전쟁 ( BC 264 년 ~ BC 146 년 ) 120년 사이에 로마와 북 아프리카의 카르타고( 페니키아의 식민지 ) 왕국 간에 3번에 걸친 전쟁이었다. 3차례 전쟁에서 모두 로마가 승리 함으로써, 포에니(Poeni) 전쟁의 승리로 로마는 북 아프리카의 카르타고 뿐만 아니라
BC 100 년 ( 또는 102 년 ) : 로마에서 태어남 BC 86년 : <코르넬리아 킨닐리아>와 결혼 BC 69년 : 첫번째 아내 <코르넬리아> 죽음 BC 63년 : 법무관에 선출 / < 폼페이아>와 결혼 BC 58년 ~ BC 51년 : 갈리아 ( 현제의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지역 ) 전쟁에 참가하여 승리 BC 47년 : 이집트 원정 및 클레오파트라 7세 만남
BC 218년 이탈리아 전역 차지 로마 제국 시대 ( BC 27 년 ~ AD 395 년 ) 씨저스의 조카 손자인 <옥타비아누스>가 옥타비아누스 ( Octavius ) = 아우구스투스 ( Augustus ) =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 BC 63 년 ~ AD 14 년 ) BC 63 년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제국의 지방 소도시인 벨레트리에서 BC 47 년 율리우스 씨저스가 아프리카로의 원정 전쟁에 참여 할 때 수행하였다. BC 44 년 옥타비아누스가 19세가 되던 해에 씨저스가 암살된 직후 공개된 유언장을 통해 BC 43 년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 Antonius )> < 레피두스>와 협정을 맺고 삼두정치를 시작하였다. BC 32년 삼두정치를 끝내고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 Antonius )>와 전쟁을 선포하였다. BC 31 년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그리스(Greece) 악티움( Actium ) 앞바다에서 BC 30 년 옥타비아누스 군대가 이집트를 정복하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자살하고 말았다. BC 27 년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와 함께 로마 초대 황제에 등극하였다. AD 14 년 옥타비아누스가 죽고 그의 사위였던 <티베리우스>가 로마의 제 2대 황제가 되었다.
로마 제국의 지배에 저항하여 유태인들이 3차례에 걸쳐 벌인 독립전쟁 이 전쟁으로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불태우고, 유태인들의 저항군대를 진압했다.
AD 200 까지 로마는 전쟁이 없고 평화가 계속되어서 330 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수도를 이탈리아 로마에서
395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죽고 로마 제국은 동 로마제국과 서 로마제국으로 양분되는데,
서 로마 제국의 멸망 ( 476 년 ) 395년 로마 제국이 동로마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분리 된 이후에 서로마제국은 로마 가톨릭 문화 보급에 힘쓰고, 유럽 문화의 형성에 이바지한 점이 특색이다.
395년 로마 제국이 동로마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분리 된 이후에 동로마 제국은 수도를 동로마제국은 비잔티움 제국은 1453년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침략으로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당하고 멸망하게 되었다.
476년 게르만족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은 로마를 정벌하여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481년부터 이탈리아 북쪽 지방은 게르만족이 건설한 프랑크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후 이탈리아 역사는 다양한 통치체제에 의해 정치적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프랑크 왕국은 게르만족의 한 부족인 프랑크족이 814년 카알 ( Karl ) 대제가 죽은 후
프랑크 왕국의 아들 3형제에 의해
이탈리아 남쪽의 시칠리아 섬은 827년 튀니스의 이슬람 세력이 이탈리아의 남쪽의 시칠리아섬에 상륙하여 1059년 로마 교황 ( 니콜라오 2세 )는 노르만족 출신의 <로베르토 기스카르>를 시칠리아의 공작으로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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